도심의 빌딩 숲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효령대군 묘역과 창권사-

우리의 서초 꾸러기가 이번엔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효령대군 묘역과 창권사에 방문했습니다

서초 방배역 4번 출구앞으로 나와서 좌측으로 빠진 이후 4분정도 직진하시면!

도심속의 한옥 사당!! 바로 효령대군 묘소와 사당이 나옵니다

~자 입구로 진입해볼까요! 

지금 여름 아니죠? 12월에 말이 정말 안되는 풍경. 눈앞에 펼쳐져있는 살아있는 한폭의 동양화!

 동화속에 나오는데 신선들이 사는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런지요? 

잠깐 효령대군이 누군가하면!!!

효령대군

[ 孝寧大君 ]요약 조선 태종의 2남. 불교에 독실하여 수많은 유신(儒臣)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도(僧徒)를 모아 불경을 강론하도록 했으며, 원각사를 창건하게 되자 조성도감 제조가 되어 역사(役事)를 친히 감독했고, 《원각경》을 국역하여 간행하였다.

효령대군 이보 묘역(청권사부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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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대군 이보 묘역(청권사부묘소)

출생-사망1396 ~ 1486
본명보(補)
별칭초명 호(祜), 자 선숙(善叔), 시호 정효(靖孝)
활동분야문학

이름 보(補, 원문은 示+甫). 초명 호(祜). 자 선숙(善叔). 시호 정효(靖孝).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부인은 정역의 딸 예성부부인이며 6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측실에게서 1남 1녀를 두었다.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해 태종을 따라 항상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형인 양녕이 세자에서 폐위되자 자신이 세자로 책봉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동생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하였다. 충녕과는 우애가 깊었고 세종이 자기 집에 들르게 되면 밤이 깊도록 국사에 대해 의논했다고 전한다. 특히, 불교에 독실하여 수많은 유신(儒臣)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도(僧徒)를 모아 불경(佛經)을 강론하도록 했다. 1435년 회암사 중수를 건의했고, 1464년(세조 10)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게 되자 조성도감 제조(造成都監提調)가 되어 역사(役事)를 친히 감독했고, 《원각경(圓覺經)》을 국역(國譯)하여 간행하였다. 문장에도 능하였다. 성격이 원만하여 친족들과 우애가 깊었고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거치면서 91세까지 장수ㅊ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효령대군 [孝寧大君] (두산백과)


서울 도심속에 이런 꿈동산 같은 산책구간이 있는줄은 처음 알았네요




꼭대기에서 본 도심의 view 숨이 탁트이는 쉬원한 기분

나무 한그루가 한 조각의 예술작품 같은지라 제가 미술관을 보고있는듯한 착각을 했습니다.

효령대군의 묘

현대적인 분위기의 도시앞에서 조선 사극에서 볼듯한 기와와 풍경이 펼쳐진다면 여러분 믿을수 있겠습니까?  시간 괜찮으실때 꼭 한번 들러보세요! 한 겨울에 꽃도 보이고 살랑살랑 바람도 불고 접근성도 좋아 산책을 떠나기에도 좋은곳이에요

 이 묘역은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하지만 주말에는 개방하지 않습니다 위치 방배역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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